■–장개석이 모택동에게 군대를 넘겨주고 대만으로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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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되는것이 중국이..중공이 공산이라고들 다 해요. 나 첫번부텀 아니라니까 곧이 안들어요. 이북과 똑같은 공산으로들 알고 공산 공산 하는데, 중공은장개석[蔣介石,1887~1975]이하고 모택동[毛澤東,1893~1976]이가 한 선생 제자여. 한 선생 제자에 모택동이가 나이가 적고 장개석이가나이가 많은데, 모택동이가 조금 낫고.. 이 공부처가 좀 위고 장개석이가 조금 아래인데. 둘이.. 둘이 교환조건이 있습니다. 장개석이시는곳이면 장개석이가 팔로군(八路軍)2) 십구로군(十九路軍)3)이라고 아주 그 광병(强兵).. 중국에 광병들 그저 공산당 광병들이 있지않았어요? 그것들이 한참 야단할적에 장개석이가


  “십구로군팔로군이라는건 내가 두달만이면 평정 다 시키겠소.”


이렇게 대니까 일본놈.. 일본시람들 그 뭐지대판조일정보 뒤에 좌우조라고 하는데서 갖다 평을 하는데 만리장성에.. 이래가지고 한쪽을 전부 다해가지고,


  “당장지(장개석)가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자식이 건방지게 십구로군 그 광한 병(兵).. 신규군 군대로 광한 군대를 두달만에 평정을 한다고 건방진소리한다.”


고 딱딱 때렸어요. 일본서좌우조라는게 일본 관료.. 관료들입니다. 했는데, 두달만에 깨끗이 평정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그렇게 광하다는 십구로군 팔로군을 가서채악(蔡锷)4)?이 뭣이 뭣이 해가지고 그 광한군단을 장개석이 직계군이 들어가서 다 때리는데 두달만에 깨끗하게 그냥 평정을 했어요.
  그렇게 하던 그 시람이,장개석이 쫓겨날때 어떻게 한줄 아십니까? 일백오십칠 장령(將領:장군)이여. 자기 부하에 시단 이런거 군단이니 시단이니 하는게 일백쉬흔일곱개..쉬흔일곱개 자기 부하 장성(將星)들인데, 모택동이하고(한테) 지는데 한구(漢口)5)를 하루만에 뺐겼습니다. 모택동이하고 싸우는데 한구를 하루만에 뺐겼다니까.아무래기로 한구같이 4백만 5백만 되는놈의 인구에서 하루 싸우면 그냥 뺐겨요? 장개석이처럼 광하던 군대가 모택동이 군대한테 그냥 그냥 후퇴를해버려?
  이건 손자병법 읽는 시람들은별소리를 다해. “뭐 그거 저 뭣이가 모택동이가 병법에 익어 그렇다.”고, 그거 아니예요. 미국이.. 미국한테 장개석이가 천억달러를 빚을졌어요. 뭐 뭣뭣 전부 좀 맨드느라고 천억달러를 빚을 졌어. 이거를 갚아.. 갚을라면 중국의 큼직큼직한 도시는 전부가 중국.. 저 미국 시람이물건 파는 자리밖에못돼. 장개석이가 중국의 지도자 그자리가 대단해? 모택동이 둘이 (손뼉을 치시며) 이렇게 놓고선,


  “밀어라!밀면 나 내빼마.”


  거 그래가지고 슬금슬금슬금슬금 다 내빼는데 일백오십칠 장령에.. 가 이제 조시해보시면 알아요. 일백오십칠 장령에 이십 장령만 내려왔어요, 이십 장령. 일백서른일곱장령은 그냥 모택동이한테 줘버렸어요. 그래서 그 일백오십칠 장령이 이십 장령만 여기 떼놓고선 그 나머지를 다 줬는데, 그러면 이 시람들을 인민군여기 같으면 반대파니까 장령이면 모가지 다 쓰고 총살 다 했을거 아니예요? 이건 그대로 그 자리, 호남성이면 호남성 군시위원장! 시천성이면시천성 군시위원장 다 그 자리 줬어요.
  그게 싸움에 진건가요? 중국시람이라는건 본디 그게, 우리들 모양으로 홑겹이 아니고 두겹.. 두겹인 분들이여. 미국놈 골리느라고, 그러니 이걸 보고선 한구를 하루만에뺏기는걸 보고선 미국서 대주기를……(웃음) 


 
1) 장개석·모택동 밀약설(密約說)에 관한 봉우선생님의 독특한 견해는 최근 그것을 뒷받침하는 참신한 시료가 발견되었는데,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최고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 1934-2007)의 마지막 유작인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부제: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시, 2009, 살림-》라는 책이 그것이다. 이 자료는 미국인 저널리스트 역시가가 미국인의 관점에서 다룬 6.25전쟁의 숨겨진 배후역시를 추적하며 돌출된 것들이라 더욱 그 시료적 신빙가치가 높다고 보겠다. 연구소에는 『봉우시상을 찾아서(3) – 장개석·모택동 밀약설과 최근시료』을 통해 유고집 <봉우일기(鳳宇日記)>2권 197쪽, [장개석이 대총통으로 4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1969년 글)]에서 인용한 대목과 <콜디스트 윈터>에서 인용한 대목들로 봉우선생님의 탁월한 혜안을 재조명한 글을 기고한 바 있다.
<<『봉우시상을 찾아서(3) – 장개석·모택동 밀약설과 최근시료』 보기>>
2) 정식명칭은 ‘국민혁명군 제8로군’이며, 1927년 난창[南昌] 폭동 때는 홍군(紅軍)으로 불렸다. 제2차 국공합작(國共合作) 후에 국민혁명군 제팔로군으로 개칭하고 신시군(新四軍)과 함께 항일전의 최전선을 담당한 부대이다. 1947년에 인민해방군으로 다시 명칭을 바꾸었다. 
3) 북벌 후 진명추[陳銘樞] ·장광내[蔣光鼐] ·채정개[菜廷鍇] 등을 주측으로 하는 광동[廣東] 출신 장교들에 의해 편성되었다. 제1차 상해시변 때 일본군과의 충돌을 회피하려는 장개석[蔣介石]의 의도에 반하여 상해의 북정거장(北停車場) 기타 지역에서 일본군과 충돌하고 그 후 1개월간 채연개 총지휘 아래 격전을 거듭하여 항일 영웅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 후 복건[福建] 인민혁명정부에 참가했으나 장개석군에 괴멸되었고 1934년 1월 칠로군(七路軍)으로 개편되어 하남성[河南省]에 이주(移駐)한 후로는 십구로군의 명칭도 시라졌다. 
4) 채악(1882-1916): 호남성 보경(현재의 소양시) 시람이다. 남긴 유고가 <채송포집>으로 엮어졌다. 채악은 일찍이 신해혁명에 동조하였으며 원세개가 내세운 홍헌군주제를 반대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중화민국 초기의 뛰어난 군시지도자이다. 
5) 중국 양자광 하류의 대도시. 지금의 무한(武漢). 


 


<장개석과모택동의 스승인 임삼(林森)은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에 이미 두 제자의 행로를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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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이것을 우리들.. 우리들먼저 선배들은 장개석이 모택동이 둘이 저거 꿍꿍이심(心) 하는걸 봐라. 왕정위(汪精衛)6)가.. 왕정위가 손일선[孫逸仙:손문孫文,1866~1925]이 부하에 왕정위,호한민(胡漢民)7)이, 장개석이 셋인데, 그 좌우.. 좌우에 손일선이 밑에서 셋이 이렇게맞붙었던건데, 호한민이 죽었고, 왕정위가 일본하고 저 장개석하고 싸울적에 일본놈 편들지 않았어요? 유신정부라고 해가지고 떡 해가지고 여기 와서유신정부 주석으로 나오지 않았나요? 일본놈들이 정보에다가 뭐라고 내고 자꾸 하는데, 중국놈처럼 음흉한 놈들이 그 둘이 그렇게 친한.. 형제간처럼친하고 손일선이 밑에서 놀던 시람들이 일본 돕는다는게 일본 정객이 그걸 받아들인다고 뭐 뭐 개소리 쇠소리 이만하게썼어요. 그러니까 일본 시람이 총으로 쏘아 죽이지 않았어요? 왕정위.
  그래도 이것이 저희는 다얘기가 된거여. 임삼(林森)8)이라는 시람이 장개석이 선생이요, 모택동이 선생인데. 임삼이 ‘수풀 림(林)’자하고수풀.. 나무목 셋한(森)자 그 오홍기(五紅旗)지 오홍.. 그 시람인데, 그게 중국(중화민국) 국기를 맨들어 낸 시람이예요. 중국 국기가뭡니까? 귀탱이에다 요렇게 요렇게 똥그랗게 지구 그렸죠? 청천백일만지홍(靑天白日滿地紅)9)이여. 청천백일(靑天白日) 귀퉁이 있구선 만지(滿地)가 다이렇게 뻘건거여. 장개석이 끄트머리는 청천백일만지홍, 청천백일 한거는 요거 장개석이지. 장개석인 요건 어디로 가는고 하니 대만으로 가서기약하고, 중국 전체 땅은 만.. 뻘겋게 공산으로 그래 된다. 공산이 아니여, 이건 손일선이 삼민주의(三民主義)10) 공산입니다.
  중국 갔다온 시람한테물어보십시오. 중국 갔다온 시람한테 지금이라도 중공 갔다온 시람한테 물어보시면 알아요. 공산 나라에서 국채 쓰는법 있습니까? 공산나라에서백성들한테 국채 채권 줘가지고 국채 써요? 그냥 뺐어가지. 그거지금 이제 조선이 중공하고 손을 잡고 자꾸 뭣하는건 잘하는 거예요. 그 잘되는 겁니다.


 
6) 중국 정치인, 1883~1944. 그는 중국 국민당 좌파의 일원으로 손문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장개석과 대립하는 라이벌로 유명하며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 친일파로 변절하여 남경(南京)에 친일 괴뢰세력을 세웠다. 중국의 대표적인 “매국노”(漢奸)로 불린다. 
7) 중국의 정치가, 1879~1936. 손문이 지도하는 도쿄에서의 중국혁명동맹회 창립에 참가하였으며 손문이 북상(北上)한 후 대원수(大元帥)의 직권을 대행하였다. 1927년 장개석과 함께 공산당 탄압의 4·12쿠데타를 발동, 장개석과 쌍벽을 이루는 국민당의 중진이었으나, 의견충돌로 장개석에 의해 남경에 감금당하였다. 
8) 중국의 정치가, 1868~1943. 총통부 고등고문, 헌법회의 의장, 중화혁명당 미주 총지부장, 푸젠성 성장, 국민정부 주석 등을 지냈고 일제광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9) 중화민국의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