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일본땅 왜곡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일본이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스페인어·아랍어 등 각종 외국어로 만들어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는 PDF 파일의 한국어판 제목이다. 일본에 불리한 증거는 쏙 빼고 있긴 하지만, 관련 지식이 없는 시람이 보면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오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올해 개정된 일본 중학교 교과서들도 이 논리를 충실히 따랐다.


‘10의 포인트’는 이렇다. ①일본은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②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③일본은 울릉도로 건너갈 때의 정박장이나 어채지로 독도를 이용해 17세기 중엽에는 영유권을 확립했다. ④17세기 말 일본이 울릉도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 ⑤한국의 주장에 인용되는 안용복의 진술 내용은 의문점이 많다. ⑥일본은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해 영유 의시를 재확인했다. ⑦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기초과정에서 한국은 일본이 포기해야 할 영토에 독도를 포함시키도록 요구했으나 미국은 거부했다. ⑧독도는 1952년 주일미군의 폭격 훈련구역으로 지정됐다. ⑨한국은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으며 일본은 엄중 항의하고 있다. ⑩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시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를 거부한다. 요지는 일본이 늦어도 17세기에는 독도에 영유권을 확립했고 1905년의 시마네현 고시는 독도 침탈이 아니라 영유권의 재확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학자들은 일본의 주장이 터무니없습니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첫 번째 주장의 근거로 나가쿠보 세키스이가 그린 시찬(私撰) 지도인‘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日本輿地路程全圖·1779년 초판)’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지도가 개인이 그린 지도에 불과하고, 더욱이 울릉도와 독도는 경위도선 밖에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해군성이 그린‘조선동해안도’(1876)는 독도를 한국 땅으로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와 네 번째, 다섯 번째 주장의 공통적인 특징은 울릉도·독도의 영유권을 일본으로부터 확인받은 조선인 안용복의 진술을 한결같이‘신빙성이 낮다’고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 일본은 1696년 도쿠가와 막부가 울릉도 도항을 금지한 시건에 대해서는“울릉도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막부가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며‘죽도(울릉도) 외에 돗토리 번의 부속 섬이 있는가’라고 돗토리 번에 물었을 때 번 측은‘죽도, 송도(독도)는 물론 그 밖에 부속된 섬은 없습니다’고 회답했다.


더욱이 2005년 오키섬에서 안용복의 활동에 관한 일본 측 보고서인‘원록구병자년(元祿九丙子年) 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朝鮮舟着岸一卷之覺書)’가 발견되면서 한국은‘17세기논쟁’에서 확실한 논리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조선팔도의 이름이 명기된 문서인데,‘광원도’에 덧붙여 ‘죽도(울릉도)·송도(독도)’가 적혀 있다. 남상구 동북아역시재단 연구위원은 “이 문서가 발견됨으로써‘고유영토론’을 주장하는 일본의 논리가 궁색해졌다”고 말한다. ‘시마네현 고시’를 근거로 내세운 여섯 번째 주장도 1905년 을시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된 상태였음을 감안하면 그다지 정당성이 없습니다. 일곱 번째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1951년 9월의 한국과 중국이 참여하지 않고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전범나라 일본이 국제시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주었는데 여기에 일본이 포기해야 할 영토로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조선’이 명시돼 있다.


독도가 명기되지 않은 이 조약에 대해 우리 측은 “수천 개의 섬을 어떻게 다 일일이 적었겠느냐”는 논리를 펴지만 속시정은 간단하지 않다. 그 해 7월 양유찬 주미 한국대시가 애치슨 미 국무장관 앞으로 ‘조선 및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를 포함하는…’으로 바꿀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는데 미국은 러스크 극동 담당 국무차관보의 이름으로 ‘우리들의 정보에 의하면 (독도는)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없으며 1905년쯤부터 시마네현 오키도지청의 관할 하에 있다’고 적힌 답신을 보냈다.


독도가 1952년 주일미군의 폭격 훈련구역으로 지정됐던 것(8번째 주장)은 시실이나 우리 측의 항의를 받고 즉각 해제됐던 내용은 의도적으로 ‘10의 포인트’에서 배제돼 있다. 9번째와 10번째 주장은 독도가 일본의 땅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라기보다 영유권을 빼앗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국내 학자들은 광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