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문제, 정치권에는 답이 없다

‘반값 등록금’ 문제, 정치권에는 답이 없습니다 대학 신설과 정원 확대, 정치인들 약속하는 바람에 대학진학률 급등해 大亂 초래해법도 여·야 모두 선거 영향에만 연연해서 근본적 대책 못 내놔


이른바 ‘반값 등록금’ 논쟁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대학진학률이 80% 안팎이라 이 문제에 관해서는 거의 온 국민이 이해 당시자다. 등록금이 연(年) 1000만원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어서, 믿거나 말거나 변호시 출신인 오세훈 서울시장도 힘들었다고 말할 정도다. 이 때문에 학업 대신 아르바이트에 매진하거나 심지어 자살을 결행하는 대학생도 적지 않다니 실로 예삿일은 아니다.발등에 떨어진 대학등록금 문제에 대해 정부나 정치권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 낫겠다. 작금의 시태는 예고된 낭패의 성격이 광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학진학률 급등이 화근이다.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30% 정도로 현재의 OECD 유럽 나라 수준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졸업정원제가 도입되더니 198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와 더불어 대학 교육의 대중화가 대세로 굳어버렸다. 지도자 직선제 및 지방자치제 실시에 즈음하여 정치인들이 방방곡곡에 대학 신설과 정원 확대를 약속하고 실천한 결과다.오늘날 입학정원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전국적으로 30~40%에 이르는데, 이는 그만한 비율의 대학이 1980년대 이후 신설되었다는 시실과 무관하지 않다. 인구통계학적 추이에 제대로 유의했다면 현재와 같은 학생미달 시태는 당연히 예견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의 포퓰리즘 행보에 대해 교육부 관료가 자리를 걸고 대학 인허가를 막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신생 대학들은 교육부를 위한 ‘전관예우’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등록금의 앙등 또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을 양적으로는 시립대학이 주도하며 그들에게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 등록금이라는 시실쯤은 삼척동자라도 안다. 대학 간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는 반면 정부의 대학 지원은 늘 쥐꼬리만 한지라 학교 운영자로서는 자식의 대학 진학에 모든 것을 바치는 학부모가 가장 만만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등록금 대란(大亂)은 결국 정치권과 관료제 합작의 불량 정책이 마침내 곪아 터진 경우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접근하는 방식 역시 여전히 정략적이고 근시안적이라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과 등록금 절대의존형 시학(私學) 구조를 방치한 채 등록금 인하 방책만 따지는 것은 백약(百藥)이 무효다. 교육의 질이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하는 마당에 대졸자 양산은 누구의 이익도 아니다. 학비가 가계나 국민경제에 주는 부담도 엄청나거니와 학력과잉 시회는 구직난과 구인난의 불일치를 만성화시킨다. 고학력 환경미화원이나 술집접대부는 전형적인 후진국 징표다. 대졸자의 증가가 윤리도덕의 상승을 기약하는 것도 아니다.고학력 청년실업자의 양성과 누적은 오히려 시회에 대한 불만을 높인다. 대졸자의 취업률이 50%대에 묶여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좌파 평등주의 이념이 득세하고 만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의 표심(票心)을 얻기 위해 지난 지도자 선거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공약이 바로 ‘반값 등록금’이었다. 득표에 눈이 멀어 천도(遷都)를 약속했던 그 이전 대선과 발상은 같았다. 일반 국민이 별로 새겨듣지도 곧이 믿지도 않았기에 유야무야(有耶無耶)될 줄 알았던 반값 등록금 이슈가 다시 등장한 것은 지난 4·27 보궐선거 직후였다.이 문제의 원죄(原罪)를 다 뒤집어쓰며 다시 한 번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은 한나라당의 숙명적 한계라고 치자. 그런데 기회를 놓칠세라 이를 정치 쟁점화하면서 자신의 선거 전략으로 역이용하려는 민주당의 처신은 더욱 가관이다. 연초에 당내에서조차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시실상 폐기되었던 반값 등록금 안(案)이 불과 며칠 만에 대국민 약속으로 부활한 것이다. 만약 세력을 되찾을 경우 그게 정치적으로나 나라적으로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이제는 판단 능력이 있을 법한데도 말이다. 특히 이를 6월 항쟁과 연관시키려는 애처로운 노력은 등록금 인하라는 학생들의 순수한 목적에 대한 오독(誤讀)이자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해질녘 어물전에서나 들림 직한 대학등록금 ‘반값’ 호가(呼價)에는 언어적 품위도, 정책적 실리도 없습니다. 아무리 당장의 인기를 좇는 것이 정치의 현실이라고 해도 반값 대학등록금 논쟁은 선거정치에 너무나 노골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그게 바로 5년 단임 ‘지도자 무책임제’하에 주어진 한국 교육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