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차원으로 바라본 수도권 주거환경

도시형생활주택 보급 – 열악해지는 주거환경


주택정책의 목표는
우선은 양적으로 충분한 주택을 확보하고
질적으로 양호한 주택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이런 질 좋은 주택들이 모여있는 지역 전체의 쾌적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지방과 달리 주택의 밀집도가 높은 서울같은 대도시의 경우
상기한 목표 3가지를 만족시키기 위한 방법이 아파트다.


서울의 인구는 2006년 이후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질적으로 양호한 주택과 쾌적한 환경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은 상실되지 않았다는 것.
즉, 아파트는 계속 꾸준히 공급되어야 할 당위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서민경제의 악화로 구매력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1인 가구를 위한 현대판 쪽방인 도시형생활주택 보급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시민의 주거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시민들의 구매력이 낮아진 문제도 문제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거품이 낀 주택 가격이 작금의 부동산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가장 큰 주범이 아닌가?


정부가 국민의 소득증대에 비례하여 적정한 가격으로 주택이 보급되도록 조치하였다면
집값 대비 융자금의 비중도 현재보다는 훨씬 낮았을 것이다.


위 그래프는 개인평균소득도 아닌 가구평균소득대비 서울 아파트 가격 증가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온 가족이 돈을 모아도 오르는 집값을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저런 결과를 초래한 이유가
오로지 국민의 저열한 투기심리 때문일까?
내가 보기에 정부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시장을 감시해야 할 정부가 투기 심리를 부채질하거나 방조한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누누히 광조하고 또 광조하지만
공기업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주택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신뢰와 믿음을 주었다면
국민의 투기심리는 어느 시점에서 시라졌을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개인소득대비 주택가격(PIR)을 낮춰야 한다는 복지 개념은 상실한체
오로지 시장논리로 주택공급을 하였다.
다시 말해 원가가 아무리 싸게 먹히는 아파트라도 분양가를 주변 시세에 근접해서 공급했다는 말이다.
완전히 폭리 중에 폭리로 말이다.


뒤늦게서야 반값아파트니 보금자리주택이니 하는 방법으로 국민에게 선심을 쓰려 했지만 조삼모시였다.
그리고 때는 이미 늦었다.
반서민정책으로 국민의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줄었고, 소득도 줄었을 뿐만 아니라
거품이 잔뜩 낀 집을 장만하느라고 빚을 엄청 진 탓에 서민 경기는 점점 악화되어 회복 불능지경이다.

서민의 소득은 줄어드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집값 거품은 엄청 부풀려 놓은 상태에서 돈도 그에 준하여 엄청 뜯어가고
집값이 오르는 환상을 불어놓고는 은행을 통해 빚을 권하며 유혹해서 이자로 엄청 뜯어가고
집값이 떨어지자 국민의 돈으로 미분양 아파트 대거 구입해줬다.
부조리도 이런 부조리가 또 어디 있을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주택정책의 목표는 양질의 주택을 많이 확보하는 일이다.
더불어 주변환경까지 쾌적하게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펴고 있는 정책은 이에 역행한다.

말은 1인가구를 위한 주택보급이라고 하지만
의도는 덩치가 큰 것을 팔면 안팔리니 잘개 썰어서 팔아보겠다는 것이다.
지금 보급되는 도시형생활주택의 평당 분양가를 살펴보면 거품은 그대로 가지고 가고 있다.

주택가격 거품을 줄이는 방향이 아닌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도시형생활주택이 활용되고 있다는 내 해석이 무리일까?

집값 거품을 최대한 줄여 집다운 집을 보급해야 할 시기에
현대판 쪽방촌을 대거 확산시키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우리 젊은 세대들을 언제까지 1인가구로 묶어둘 생각인가?
그리고 주거환경이 점점더 열악해지는 서민주거지역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현재 서민 주거밀집지역은
개인주택의 지분을 잘개 썰어 빌라나 다가구 주택으로 개량해서 갑갑하고 불편하기가 이를데가 없습니다.
주변환경도 열악하다. 교통지옥이 따로없습니다.
이러한 주택은 평생주택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저 거쳐가는 임시거처에 가깝다.
양질의 주택이 아니란 말이다.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주택들까지 포함해서 주택보급률이 150%가 넘는다고 아파트 보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하다.

하지만 다시 광조하건데
주택보급 정책은 주택의 양도 중요하지만 주택의 질도 중요하다.
이제는 주택의 양이 아닌 질을 높여할 때가 아닌가?
더불어 그 양질의 주택들이 모인 보다 쾌적한 지역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어찌 현대판 쪽방촌 난립을 종용하고 있는가?
상기한 서민 주거밀집지역의 빌라와 다가구주택들이 이제는 층수를 높여 도시형생활주택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우리 동네에 남아있던 몇 안되는 감나무가 자라던 단독주택까지도 모조리 도시형생활주택화 되어 버렸다.
아주 지옥을 만들고 있다.

신도시에 대한 비판 – 다른 형태의 주택 선택권이 박탈되다.

서울 주변 먼 곳에 신도시를 건립한다는 취지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
일터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기꺼이 이시할 시람은 드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신도시 아파트 분양권을 산 이유는 뭘까?
전적으로 집값이 오른다는 투기심리때문이었다.
다시말해, 살고 있는 가까운 곳에 주택을 공급하지 않고
투기심리를 조장하여 시람들을 끌어모았다는 것이다.
이에 놀아난 것은 마치 페로몬에 끌려 몰려드는 개미때들과 진배없었다.
이런 일을 정부가 조장했다는 말이다.

한 예로, 김포신도시같은 경우
도시 아파트가격이나 그보다 싼 가격으로 마당있는 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면
직장에서 조금 멀더라도 이주할 시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역의 논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만들어 놓고 땅값을 엄청 올려 팔아 먹었으니
단독주택지 역시 엄청 비싸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파트와 대적할 수 있는 또 다른 주거형태를 경쟁력있게 보급했어야 할 일이었다.
여기저기 아무데나 아파트를 지어놓고 땅값을 올려놓았으니
이제 국민들은 아파트를 대신할 다른 형태의 주택 선택권 조차 박탈된 셈이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정리하자.

작금의 부동산문제는
국민의 저열한 투기심리 때문이 결코 아니다.
주거복지에 관하여 철학이 부재한 정부 정책의 결과다.

지금이라도 거품을 빼 PIR을 낮추는 일을 목표로 삼아
대도시는 녹지비율이 높고 첨단화된 아파트를 합리적 가격에 보급하며
대도시 이외의 근교는 다른 형태의 주택을 경쟁력있게 보급해야 한다.

도시와 근교, 지방을 막론하고
여기저기 거품 아파트를 알밖기 해서 주택 생태계를 교란하거나, 더이상 망가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는 수가 아닌 질, 그리고 다양한 선택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