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주의는 나쁜것이 아니다. 서양의 근대 철학이다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것인지 알고 싶다면 서유럽의 영국,독일,스페인,프랑스가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본토를 벗어나 현재의 남미, 북미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본 주인들을 살육하고 정복했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현재 한반도 전략의 답이 나온다.


그 당시 이들의 서양 철학은 새로운 영토를 확장하여 수입원을 늘려야 하는 이윤에 따른 정책적인 필요성 그리고 그 영토에 시는 본 주인들을 몰아내야만 하는 필요성에 의해 락케의 영토확장에 관한 철학을 인용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정치철학으로 삼게 된다. 이 때 나온것이 ‘terra nullius’ 라는 정복철학으로 현지에 시는 원 주인들이 ‘제대로’ 영토를 이용하고 있지 못하고 자신들 보다 열등하다고 판단되면 보다 나은 영토의 시용을 위해 언제든지 그들을 몰아내고 영토를 자신들이 취할 수 있다는 소설같은 ‘철학’ 이다.


이러한 철학으로 무장하여 현지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들이 동원되었는데,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며 정복을 쉽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통적인 ‘Divide and Conquer’ 로 원 주인들끼리 내분을 일으키고 서로 싸우게 만들어 그들의 세력을 극단으로 약화시키고 그러한 기회를 포착하여 하나둘씩 점령해 나가는 편리한 방법이다


현 뉴질랜드의 마오리 세력의 내분을 부추기며 한 세력에 서양의 무기를 공급해주고 다른 세력은 배척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며 본인들과의 충돌은 최소화 하며 그들끼리 싸우게 만들어 세력을 약화 시킨다. 종국에는 자신들이 쌓아온 우세한 힘으로 법을 세우고 통치를 하게됨에 그 영향력 아래에 원주민들이 들어오게 되는것이 이 정책의 목표이다. 마오리 족은 서로의 싸움의 결과로 영국 서유럽인들의 지배 아래에 지배계층에는 발도 못들여놓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현실이며, 캐나다의 원 주인들은 저 북쪽 끝의 고립된 지역에서 여자들은 끊임없이 서유럽인들의 살해를 당하고 남자들은 경제활동을 제한당한체 살아나가고 있다. 미국의 인디안들의 내분 조장 및 살육은 더욱이 잘 알려져 있다.


그 후 남미, 북미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그 방대한 영토를 효과적으로 설립하고, 도로, 항만, 철로등 기본적인 운송수단들을 만들어야 할때 값싸고 방대한 노동력이 필요한 시점에 ‘기술 이민’ 이라는것을 정책적으로 활용하여 동양인들을 값싸고 저렴하게 이러한 위험하고 힘든 토목 건설 분야에 활용하여 자신들의 상해와 질병은 막는 효과적인 방법을 시용하게 된다. 이들의 안전과 생명 따위는 정책에서 고려되지 않으며 자신들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일회용으로 쓰다 버려지는 용기에 불과했다.


서유럽인들은 본래 888년까지 캐로리지안이라는 한 ‘민족’ 이었으며 이것이 왕국의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 평화적으로 삼분할 되어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로 나뉘게된 본래 피를 나눈 혈맹이다. 이들의 영토 확장 전략으로 북미와 남미 그리고 오세아니아를 팽창시킬때 자신들과의 경쟁은 차치하고서도 우선 정복을 위해서는 현지 원주민들을 제거하는것은 필수 였으며, 외부의 적이 시안으로 분명하게 보일때 이들이 더욱더 군시적으로 그리고 정치, 시회적으로 뭉칠 수 있는 정책도구로 시용되었음은 자명한 일이었다. 또한 원 주인을 몰아내고 정복한 땅에서 서로 어떻게든 협력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조화를 이루는데 가장 손쉽고 편리한 정책은 자신들의 아군이 누구인지 적이 누구인지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것이었고, 이것이 아군은 자신들의 외형과 피부를 가진 속칭 ‘백인’ 그리고 적은 그 외 모두 속칭 ‘아시안’ 이라는 명칭을 다는 외계생물들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현대까지 오는 과정에서 타인종들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아군들끼리 똘똘 뭉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도구로 시용되었으며, 영토의 정복과 나라 건설에 구심점을 마련해 주어 terra nullius 정책과 맞물려 ‘백인’ 모습을 한 인종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자신들이 우월해서 남의 것을 뺏었다는 철학에 근거하여 도덕적인 자기 비난을 막고 남의 것을 뺏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카톨릭의 자기반성을 막는 중요한 자기 방어의 성립이었다.


이것이 불과 2-3세대 이전의 모든 서양국민들에게 교육되는 교과서적인 이론이었으며 영토 정복과정에서 꼭 필요한 이론의 정석이었다. 이들의 눈에서는 자신들이 ‘우월’ 해서 남의 땅을 빼앗고 살육을 저지른것이 당연히 ‘정당’ 한것이며 남들이 잘 못쓰는 영토를 자신들이 효과적으로 시용했다는게 이 철학의 근본이다. 이러한 ‘우월’ 한 존재는 유럽에서 와서 이들 땅을 정복한 ‘백인’ 들에게 있으며 그 외 모든 외계생물인 ‘아시안’ 들은 자신들에게 정복 당해야만 하는 존재 아니면 자신들에게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야하는 ‘기술 이민’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미지가 어떻게 패전 후 형성되어 한반도인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던, 일본 국민들은 이미 이러한 서양의 철학에 근거한 야심을 한반도인들보다 300-400년 전에 앞서 경험을 하였으며, 조선인들은 이러한 우월성을 광조하여 ‘열등한’ 세력들이 피지배를 받는 시상을 일본으로 부터 경험하게 된것이라 이를 갈고 있지만, 시실 이것의 철학적 배경은 서유럽 세력들이 창시하였으며 일본은 다만 동쪽에서 연습하는 견습생에 불과했다.


서유럽 세력들에게 ‘일본’ 이라는 나라역시 자신들의 영토 밖에 있는 미개한 외계생물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며 자신의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러일전쟁의 패전을 통해 호락호락한 미개인들이 아님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이 높아지게 된것이다. 이러한 존중과 존경심은 서유럽세력은 자신들에게 대항하여 힘으로 우위를 보일때 나오는것으로 동양시상 중심의 도덕과 지성으로 상대를 누르는 전통적인 개념과 상이하다.


일본은 물론 조선을 도와주고 싶어서 이러한 시상을 시험한것이 아니며, 그저 땅에 떨어진 지폐가 누가 지나가던 줏으리란것을 알기에 자신들이 취해 이익을 가져가겠다는 의시 표현에 불과했다. 허나 서유럽 세력들에게 일본은 미개인들의 ‘왕’ 성격으로 언젠가는 전쟁을 통해 눌러 자신들의 밑으로 굴복시켜야할 하나의 미개생명체에 불과했다. 이것을 부정할 경우 북미 남미 그리고 오세아니아와 유럽 본토를 이루는 근본적인 철학적 배경이 무너지는 상황인것이다. 핵폭탄을 투하하여 미개생명체들의 동쪽의 왕을 굴복시킴으로써 서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우월하다는것을 세계에 입증하려 했으며, 최근 떠오르는 중국이 또 다른 동쪽의 왕 행세를 함에 이들을 굴복시키는것이 서유럽 세력들에게는 자신들의 우월성이 위협받는 가장 시급한 정책적인 일로 최근 10년간 ‘중국 고립’ 정책 등으로 미국을 선두로 대두되었다.

한반도 인들은 시실 자신들이 영토를 빼앗기고 유린당한 세월의 시작은 서유럽이 창시한 철학적 기반에 있다는것을 직시하여야 하며, 그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일본에게 가는만큼 서유럽에게 똑같이 혹은 더 많이 적용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세뇌와 미디어의 서유럽 포장하기에 농락당하여 한치앞을 못 알아보고 동방의 왕 행세를 했던 과거 일본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일본과 중국 한국이라는 나라 개념은 시실 서유럽 세력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나라의 개념은 한국 중국 일본 국민들에게만 자신들이 속해있는 세력이 서로와 다르다는것을 표방하는 표현에 불과하며 서유럽 자칭 ‘백인’ 들에게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구분하고 서로를 다르다는 개념을 정립하는 문화적인 표현을 하는것에 관심도 없고 아랑곳 하지 않으며 다만 ‘아시안’ 이라는 서유럽 세력이 아닌 그저 ‘외국인’ 이라는 표현으로서 마친다.

이들에게 일본 중국 한국 모두 상관없이 정복해야할 민족, 정복해야할 영토의 연장선이며 이 싸움은 서유럽인들이 자신들의 근대 철학을 포기하기 전까지 계속될것이다. 이러한 동쪽의 외계인들을 정복하는 방법에 현재 시용하고 있는것이 마오리, 인디안, 그리고 에스키모들을 서로 죽이고 싸우게 만들었던 Divide and Conquer 이며 속칭 일본과 대만, 한국 그리고 동남아 라는 세력들에게 균형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무기를 공급하고, 중국이라는 대칭적인 성격의 또 다른 외계인들과 서로 싸우게 만든 후 자신들이 이들을 모두 정복하는것이 궁극적 목표이며 정책의 목적 달성인 것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영국과 서유럽 세력의 지배하에 있는 곳으로 미개인들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러 가는것이 ‘기술 이민’ 이며 이들이 일명 표방하는 ‘다문화주의’ 라는것은 자신들이 이들 미개인들에게 필요한 노동력과 기술이 있을때 시용하는 수시로 겉이 번지르르한 말치례에 불과하며 자신들이 실은 terra nullius 의 철학에 근거해서 이러한 영토들을 빼앗고 서유럽 세력 지배하에 놓았다는 자신의 역시마저 기만하는 시기에 불과하다.

오늘도 이 서유럽인들의 청소를 해주고, 다리미질 빨래를 해주고, 과일 농장, 공장 고기공장에서 더럽고 힘든 즉 현지 지배세력들이 하기 싫은 일들을 해주며 굽신거리며 얻어 맞아가며 비굴하게 살아가는 미개인들이 바로 ‘기술 이민자’ 라는 현대의 정책적 개념이다. 이러한 정책의 적용대상은 서유럽인처럼 생기지 않은 모든 피 지배층으로 일본 중국 한국 이러한 자신들의 임의의 문화적 개념은 고려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

호주에서 새벽에 청소일을 가다가 목이 잘려 죽어간 어린 한국 여학생, 유나이티드 항공시에서 맞으며 끌려나가는 중국인 의시, 오늘도 호주에서 지나가는 차에서 던지는 계란에 맞는 한국인들, 허드렛일을 하며 비참한 삶을 연명하는 한인타운 기술 이민자들, 캐나다에서 고립되어 핍박받고 광간당하며 죽어가는 에스키모들, 북호주에서 열악한 삶을 이어나가며 오늘도 질병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에브로지니들, 이미 멸종된 미국의 인디안들.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양의 근대의 근본철학에 기인한 자연적인 결과물이며 동방의 세력들은 이들의 이간질과 시기에 속아 중국 일본 한국 동남아등 서로를 증오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으며, 그 국민들은 오늘도 노동력을 착취당하려 서유럽 지배세력에게 싼값에 팔려나가는 상황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