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기업50년대1위기업

반세기전 50년대 재계 1위기업은 삼성이 아니었습니다. 전라도기업이었습니다. 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 전라도가 원래 못살아 거지가 많았다.그런 황당한 글들이 있길래 몇줄 적어 봅니다. 

50년대 1위기업은 전라도의 삼양사 (라면만드는 삼양식품이 아닌 삼양그룹) 였다. 

 
조선시대에는 한때 전국 세금의 60%가 거둬들여지기도 했다. 당시에 전라도의 부자는 쌀 1만석 족히 넘기고 영남의 부자는 쌀 3천석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말이 있었고 조선 인조시대의 인구분포를 보면 남북한 합해 전국에서 가장 인구 많던 곳이 전라도땅이었다. 1943년 당시 인구분포를 보면 

서울과 경기도민을 합한 수보다 전라도민의 수가 두배가 넘는 훨씬 많았다는 것은 산업화 이전까지만 해도 전라도지역으로 유입되던 인구와 그 지역 경제 지금과 같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일제시대 산업화의 주역이 된 사람들은 대부분 호남의 대지주 출신들과 그 후손들이었고,60년대 초 박정희가 재벌들에게 부정축제 혐의씌워 전재산 몰수하기 전까지 10대재벌의 반 가까이가 전라도 기업이었다. 

목포는 해방 후 전국 8대 도시였다 

전주는 조선시대 한때 전국 3대도시 안에 들었고 조선말기에도 이북포함 5대도시에 들던지역 

지금은 20대 도시에 겨우 드는 정도로 알고 있다. 

인구 140만의 광주 광역시의 한해 예산이 경상도 한 특정한 시의 한해 예산보다 낮다는 것은뭘까 

  

전라도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계신 일부 영남 특히 대구경북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보리문둥이가 학문을 좋아하고 보리가 많이 나는 지역이어서 보리문둥이라고 붙여졌다는 말을 하고 다니는 분이 있어서 보리문딩이 얘기를 좀 하겠다. 보리문딩이라는 말이 괜히나왔던 것일까 한때의 일이지만 과거 전라도에 넘어와서 보리훔쳐 먹는 일이 많았을 정도로 못살았던게 한때 경상도 일부 지역이었고 고서를 풀이하여 인용하자면 전라도 지역은 인구도 많지만 부자가 많고 경상도는 인구는 많지만 일인당 소득이 전라도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라고 나온다. 

전라도에서는 과거부터 부자들이 많아 전라도에 가면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고 호남의 몇 도시들은 실제로 전국에서 가장 재정자립도가 높았다.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라도의 어느 특정지역 가서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 그것 만으로도 유추해볼 수 있다. 

지역감정이 정치에 이용되던 그당시 인구 이미 전라도보다 경상도 인구가 두배가 되어버렸다.  
부산지역의 경우는 광복이후 불어난 인구와 특히 6.25이후 서울경기 지역의 부유층들이 가장 먼저 피난을 오면서 자리를 잡고 또 그 사람들이 중심이되어 부산에 정착하며 기업을 하기 시작고 그지역은 광주지역과 정서가 비슷하여 약간은 진보적 개혁 성향이 강하고 일본과 접해있었으며 일제시대 개발된 경부선 철도로 인해  호남보다 먼저 산업시설들이 들어서면서 더 클수 있었던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전라도가 인재가 없었던것도 아니다.아래에 링크된 호남인재에 관한 글을 보면 인재가 있어도 클 수 없었던 대구경북 중심 영남패권주의에 대해 알 수 있다. 

지금은 강원도보다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전국 꼴찌가 되엇고 공장이 없어서 실업률도 낮을 수 밖에 없슴…대구지역이 실업률 높아졌다고 떠들어대지만거기는 원래 일자리라도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것. 

가끔 보면 영남보다 호남에 친일파가 가장 많다는 글이 있는데 그건 맞는말 당시 기득권층을 놓고 보면 호남출신 친일파가 조금 더 많은 것으로 나오지만 서민층은 또 다르다는걸 알아야함. 

부산,경남은 대구경북의 과거 정치인들에 같이 이용되면서 영남패권주의에 물들기 시작했지만 

그지역은 원래부터가 타지역유입인구가 더 많던 곳이고 투표성향에 있어서 보자면 

71년 박정권이 지역감정 조장하던 시기에도 부산은 항상 어디에도 크게 치우치지 않았으며 

박정권때 부마항쟁 그리고 전두환 정권때도 민주화를 위해 많은 분들이 희생하던 지역이다. 

  

영호남 지역감정은 과거 기득권층 정치인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면서 나온 것들이라고 본다.